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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IN May-June 2021 (Korean Edition): Believing, Living, and Enjoying by the Word
QTIN May-June 2021 (Korean Edition): Believing, Living, and Enjoying by the Word
QTIN May-June 2021 (Korean Edition): Believing, Living, and Enjoying by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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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IN May-June 2021 (Korean Edition): Believing, Living, and Enjoying by the Word

Автор Yangj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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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б этой электронной книге

QTin is monthly devotional (so-called QT, which stands for Quiet Time) magazine for adults and young adults.

It is a QT magazine for adults and young adults wanting to read the Bible from the context of redemption history and to change to a biblical value system. It was originally published only in Korean, 30 writers and editorial staff ar

Язык한국어
ИздательRH Korea
Дата выпуска27 апр. 2021 г.
ISBN9791189927769
QTIN May-June 2021 (Korean Edition): Believing, Living, and Enjoying by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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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TIN May-June 2021 (Korean Edition) - Yangjae Kim

    발·행·인·칼·럼

    소명의 자리 image-2-31856.png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 1:1-2)

    골로새서는 올 초에 우리가 묵상한 에베소서와 같이 교회에 관해 다룬 서신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에 의해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몬 1:2,7). 이 에바브라가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금욕주의, 천사 숭배 등의 이단 사상이 교회에 침투했음을 보고했고, 이에 바울이 쓴 편지가 바로 골로새서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수많은 이단 사설이 난무하지만,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완전하심과 탁월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고난이 해결되어서, 또는 고난이 너무 오래되어서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분이 있습니까? 바울은 그런 분에게 하나님이 부르신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그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공동체적 소명을 생각하며, 완전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교회 밖 세상에 이 예수님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이 예상될 때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사역을 회피할수록 그 자체로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역에서 섬세함이란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마음의 결을 맞추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를 위해 함께 울어주고,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한국 지성의 큰 산맥으로 불리는 이어령 교수도 코로나19로 온 인류가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흘리는 이타적인 눈물 한 방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눈물은 나를 위해 울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 각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교회에 공동체적 소명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지, 아니면 나 자신과 내 가족, 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우리끼리만 좋아하는지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모두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지만, 저라고 왜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그만 쉬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오스 기니스는 자신의 책 『소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줄곧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부르심 때문이다. 그러니 제가 길을 안다며 ‘여기까지 섬기겠다’고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줄곧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제 생의 마지막까지 말씀묵상과 가정 중수를 외치며 가는 것이 이 소명에 응답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진정 소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디모데처럼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동역자를 허락해주십니다. 디모데는 출신과 배경이 바울의 동역자가 되기에는 부족했지만, 바울이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그를 양육했기에 믿음의 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골로새는 브루기아 주州의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와 함께 성장한 도시이지만, AD 61년경 지진이 나면서 하루아침에 삼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가 힘든 상황에서도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짖었기에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경에서 언급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내게 진정한 소명이 있다면 이처럼 디모데 같은 사람, 골로새 교회 같은 곳에 찾아가서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서신서에 유독 ‘은혜와 평강’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은혜’는 헬라식 인사이고, ‘평강’은 히브리식 인사입니다. 바울은 이 두 문화를 다 인정하며, 히브리인과 헬라인을 지혜롭게 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은혜와 평강이 누구로부터 온다고 했습니까?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되 하나님과 연관하여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두 하나님과 연관 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실을 평가할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대로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과학자는 과학의 관점에서, 경제학자는 돈을 중점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최고로 여깁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갖도록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는 특별히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한 말씀으로 큐티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최고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배우자를 섬기는 자리입니까? 때마다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자녀를 양육하는 자리입니까? 질병이나 장애의 자리입니까? 힘든 사람을 섬겨야 하는 일터입니까? 그곳이 여러분의 소명의 자리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기름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부르신 그곳에서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골로새 교회를 찾아가고 형제 디모데를 도와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의 달에 은혜와 평강을 전하며

    QTM 대표

    김양재목사님 싸인.PSDimage-4-31820.jpgimage-5-31819.jpg큐티가이드_01.jpg큐티가이드_02.jpg

    날마다·큐티하는·사람들

    우리 가정의 보석, 동욱이 덕분에 거룩하게 살고 있어요

    정인식·이영순 집사, 정동욱 형제

    자폐증 청년의 마라톤 완주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 초원이의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 소원은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거예요. 아픈 자녀를 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대변하는 가슴 아픈 소원이지요. 그런데 여기 지적장애인 아들을 통해 모든 걸 잃은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말씀으로 천국을 누리는 한 부부가 있습니다. 그 주인공인 정인식·이영순 집사 부부와 하나님이 이 가정에 보내주신 보석, 정동욱 형제를 만나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인식 안녕하세요. 동욱이 아빠 정인식 집사입니다. 저는 불신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교회는 군대에서 주일에 예배를 가면 작업에서 빼준다고 해서 처음 가 봤는데, 당시 신앙은 없지만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라는 찬송을 듣고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어요. 그 후 세상 성공을 위해 살다가 믿는 아내를 만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교회에 따라 나갔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무늬만 신자로 살았지요. 그러다 외도한 것이 들통나면서 아내의 강권으로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창세기 말씀을 듣고 비로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요. 지금은 교회 소그룹 리더로 섬기고 있습니다. 작년 말에 퇴직하고, 올 초부터 암 환자인 아내를 대신해 지적장애가 있는 큰아들 동욱이를 전담해서 돌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여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요.

    이영순 동욱이 엄마 이영순 집사입니다. 저는 다복한 불신가정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어요. 9살 때쯤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하면서 쭉 신앙생활을 했지만, ‘성실한 남편을 내가 전도하리라’는 교만으로 불신결혼을 했지요. 동욱이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발달장애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인지능력도 떨어졌어요. 제 열심으로 아이를 정상아로 만들려고 온갖 특수교육을 받게 하며 애썼지만 아들을 더 힘들게 할 뿐이었죠.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양육을 받으면서 제 열심으로 아픈 아들을 고쳐보려던 교만을 깨달았어요. 남편의 바람 사건을 겪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의 죄도 회개하게 되었고요. 신장암과 폐암을 겪은 후 지금은 환자의 경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어요.

    정동욱 저는 39살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복지관의 보호 작업장에서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복지관에 못 가요.

    Q. 집사님 가정을 구원으로 이끈 사건은 무엇인가요?

    정인식 직장에서 기술직에 있다가 영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의의로 실적이 좋아 그때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어요. 접대차 룸살롱에도 자주 드나들었죠. 그러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나 2년간 이중생활을 했어요. 그러던 중 그녀와 헤어지는 조건으로 이별 여행을 간 것이 아내에게 덜미가 잡혀 교회 공동체에 끌려오게 되었죠. 말씀을 듣고 저의 죄가 깨달아지긴 했지만, 1년 가까이 공동체에 죄를 고백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내는 그런 저를 추궁하지 않고 기다려주었어요. 이후 공동체에 저의 음란죄를 토설하고 소그룹 모임의 리더로 섬기게 되었죠.

    그러다 2013년, 아내가 사랑부(교회 내 지적장애인 부서) 야외 모임에 가서 ‘추억의 닭싸움’을 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치게 되었어요. 그런데 치료를 받다가 우연히 신장암이 발견된 거예요. 당시 아내는 암 3기인데도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간다며 평강을 누렸어요. 하지만 저는 아내가 죽으면 동욱이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렵기만 했죠. 그런데 아내의 몸속에 무려 10㎝나 되는 혹이 자라기까지의 세월이 제가 바람피운 기간임이 깨달아지니 울 기력이 없도록 울며 회개할 수밖에 없었어요(삼상 30:4). 지금은 평생 아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해요.

    이영순 성실하고 착한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2년 동안 이중생활을 하며 바람피운 사실을 알고 충격이 컸어요. 하지만 두 아들을 홀로 키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가정을 깰 수 없었죠. 양육 프로그램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믿음의 공동체에 왔지만, 처음에는 ‘가정을 지킨 나는 옳고, 바람피운 남편은 그르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용서하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양육을 받으면서 남편의 바람 사건이 우리 가정에 예수님이 오시기 위한 사건임이 깨달아졌어요. ‘인간이 100% 죄인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남편이 이 일로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남편을 향한 원망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두 번의 암을 겪으면서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어요. 두 번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수술이 잘되어 항암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남편이 아픈 동욱이뿐만 아니라 암 환자인 저까지 건사해야 하니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남편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정동욱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가족들은 제가 충격을 받을까 봐 엄마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려줬어요. 그때 저는 엄마가 잘못될까 봐, 죽을병에 걸려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히스기야처럼 통곡하며 기도했어요(왕하 20:1-3). 하지만 엄마의 건강이 회복되니 예전처럼 엄마에게 다시 짜증을 부리고 있어요.

    Q. 《큐티인》을 언제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가족이 한 말씀으로 큐티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으시다면?

    정인식 믿음의 공동체에 와서 《큐티인》의 전신前身인 《이슬비》를 처음 접했는데, 간증을 읽고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아무래도 부부가 같은 말씀으로 묵상하다 보니 부부 싸움이 많이 줄었어요. 각자 자기 죄를 먼저 보고 서로 배려하게 되니까요. 그래도 가끔 아내의 지시하는 말투 때문에 혈기가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이 시대의 순교는 혈기 부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려고 해요.

    이영순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기 전, 동욱이를 보며 저희 가정을 안타까이 여긴 지인이 《이슬비》를 건네주신 적이 있어요. 그때 매번 돈 문제를 일으키는 시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는 게 힘들지만, 그런 시어머니가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계신다는 내용의 간증을 읽었어요. 당시 저의 가치관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런데 공동체에 속해 《큐티인》으로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의 가치관이 깨지면서 바람피운 남편이 나의 거룩을 위해 대신 수고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아지더라고요. 사실 남편이 저의 지시하는 말투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걸 알지만, 이게 잘 고쳐지지가 않아요. 남편의 혈기를 돋우는 자가 다름 아닌 바로 저랍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눈물).

    정동욱 처음에는 엄마, 아빠와 《큐티인》을 같이 봤는데 어려웠어요. 사랑부에서 《새싹 큐티인》을 하는데, 글씨도 크고 활동 자료가 많아서 좋아요. 지금은 날마다 《새싹 큐티인》으로 큐티해요.

    Q. 동욱 형제를 양육하며 깨닫게 된 연약함이나 죄가 있으신가요? 말씀을 묵상하며 그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가 되었나요?

    정인식 겸손한 사람은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다고 하시는데, 하나님 앞에 저를 항상 깨어 있게 하는 존재가 바로 동욱이입니다.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동욱이가 없었다면, 저는 벌써 세상 욕심에 흘러 떠내려갔을 거예요. 동욱이가 저희 가정의 보석이지요. 동욱이는 눈만 뜨면 온 집을 헤집고 다니며 저희 부부가 무엇을 하나 관찰해요. 그러면서 주일예배는? 수요예배는? 목장(소그룹 모임)은? 하며 항상 ‘기승전 교회’ 이야기를 하니 동욱이 덕분에 저절로 거룩해질 수밖에 없어요(웃음). 아픈 동욱이로 인해 저희 집이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 모든 것을 얻은 셈이죠. 연약하기에 저희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동욱이를 보면서 저도 한계상황에서 주께 매달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동욱이를 키우면서 낙태법이 얼마나 생명을 유린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어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생명을 낙태하는 것이야말로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태아생명보호법’이 속히 제정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영순 어릴 때부터 말이 늦고 사회성이 부족한 동욱이를 보며 ‘어떻게 정상아로 키울까?’ 고민했어요. 반면 잘생기고 활달한 작은아들은 존재 자채로 제게 큰 기쁨이었죠. 친정어머니는 동욱이를 키우면서 힘들어하는 제게 한없이 자상하신 분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차라리 내 딸을 위해 큰손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지인에게 전해 들었어요. 저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 미웠지만, 그 후로 저도 힘들 때마다 ‘동욱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라고요. 그러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땅은 깨진 유리병과 양철 조각처럼 찌르는 것들과 온갖 더러운 오물까지 다 받아내는 낮은 땅이라는 설교말씀을 들었어요(창 1:10). 하나님은 내가 믿음의 옥토가 되어 어떤 사람도 감당해내기를 바라시는데, 유리 조각 같은 장애 아들이 나를 찌른다며 품기 싫어한 저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지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엄마가 너에게 큰 죄를 지었어. 용서해줘라며 울었는데, 동욱이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울지 마 하고 제 품에 안기더라고요. 감당하기 힘든 자녀를 두신 분들이 차라리 아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우리 믿음의 옥토가 되어 아픈 자녀를 잘 품고 가요 격려하며 가고 있어요.

    Q.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라는 말씀처럼, 나를 살린 말씀은 무엇인가요?

    정인식 교회는 다녔지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삼위 하나님이 의논하시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지으셨다는 말씀이 들리면서 창조 사역이 믿어지고,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창 1:26). 감추어진 성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자 성자 하나님이 제게 오셨고, 그 뜻을 이루고자 성령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저를 도우신다는 말씀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지요. 그러니 제 인생 최고의 축복은 내연녀와 이별 여행을 갔다가 아내에게 들킨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믿음의 공동체에 끌려와 나를 살리는 말씀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영순 처음에는 동욱이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발육이 늦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5살 때 계단에서 떨어져서 CT를 찍었는데, 의사는 출생 당시 난산으로 목이 졸리면서 중추신경이 경미하게 눌렸고, 그로 인해 인지력과 운동신경이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했어요. 이후 저는 동욱이의 장애가 제 탓이라는 생각에 아이를 고쳐보고자 혈루증 앓던 여자처럼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아이를 괴롭게 하고, 많은 돈을 허비했어요(막 5:25-26). 날마다 아들이 낫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제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말씀을 응답으로 주셨어요(고후 12:7-9). 바울이 오히려 육체의 가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문 것처럼 하나님은 동욱이가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들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가며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그분의 뜻임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Q. 마지막으로 장애 자녀를 가족으로 둔 가정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정인식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모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인데, 세상에서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죠. 장애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아이의 장애를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서로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가족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때 편견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이영순 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잖아요. 저 역시 두 곳에 암이 있다 보니 하나님이 언제 데려가실지 모르는 인생이에요. 그래서 동욱이에게 엄마가 평생 너의 보디가드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엄마도 천국에 갈 거란다. 그때 항상 너의 보호자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꼭 기억하렴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는 말씀처럼 신앙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인식·이영순 집사님과 정동욱 형제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집사님 가정을 통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가정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취재 손유진 김윤현 유정현 사진 송부영 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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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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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하 13-36장

    _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다윗의 길 대(對) 이스라엘 왕들의 길

    역대하 13-36장은 남유다의 2대 왕 아비야부터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의 통치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등장하는 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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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기 저자는 19명의 왕 가운데 8명은 선한 왕으로, 8명은 악한 왕으로 평가하고, 3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통치를 하면 정직히 행했다고 인정하고, 그 반대로 우상을 좇아 통치하면 악을 행했다고 고발합니다. 역대기는 이 둘을 ‘다윗의 길’과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명확히 구분합니다(17:3; 21:6,13; 28:2; 34:2).

    역대기 저자는 특별히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왕을 다른 왕들보다 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이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함으로 예배를 회복한 일을 강조합니다. 사실 이 네 왕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아사는 20년간 지속된 북이스라엘과의 내전을 수습해야 했고, 여호사밧은 강한 왕권을 쥐고 우상숭배로 유혹하는 아합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선왕 아하스가 남긴 총체적 타락을 바로잡아야 함은 물론,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쇄도하는 앗수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했습니다. 요시야는 므낫세와 아몬이 반세기 넘게 쌓은 우상숭배의 죄악 속에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앗수르와 애굽이 충돌하는 격변기에 국가의 생존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국제 정세로만 보자면, 이 네 사람보다 여호람이나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살던 시기가 훨씬 좋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우상을 더욱 열렬히 섬겨 나라의 멸망을 촉발하고 맙니다. 이는 결국 환경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태도가 문제 해결의 관건임을 보여줍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윗의 길로 가면 하나님이 책임지시지만, 좋은 환경에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가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온 백성을 향한 초대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왕에 관한 기록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초대했다는 것입니다(15:9; 19:4; 30:6; 34:21,33). 이 선한 왕들은 북이스라엘 백성이나 앗수르의 지배하에서 이방인과 섞여 살게 된 남은 백성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 모두를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배하라고 부릅니다. 이 부름은 문자적으로는 당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지만, 영적으로는 이 기록을 읽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향한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이 초청으로 우리를 새로운 소망 가운데 부르십니다. 열왕기와 달리 역대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아마도 가장 악했던 왕 므낫세가 회개하는 장면일 것입니다(33:9-17). 그 어떤 왕보다 심한 악행을 저지른 므낫세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이 환난 중에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왜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을 추가로 기록했을까요? 므낫세의 악행의 결과(왕하 21:10-15)로 멸망하여 바벨론에 사로잡혔다가 70년 만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이 기록이 어떤 울림을 주었을까요? 아마도 ‘포로’라는 낙인이 찍힌 존재(28:11), 삶의 터전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나그네’ 같은 인생이라 여기며 절망했을 그들을(30:25), 누구라도 고난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소망을 갖도록 설득하여 회개의 자리로 초대하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구원으로 초대하시는데도 듣지 않고 믿지 못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직접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의 소망’, 즉 소망 중에 최고의 소망이라고 고백합니다(골 1:27).

    골로새서

    _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 교회

    골로새는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와 함께 브루기아 지역에 있는 도시였는데,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골로새는 지역의 정치·경제 중심지인 라오디게아나 온천으로 유명한 히에라볼리만큼 번영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주해 온 여러 민족이 골로새에 모여 살고 있었는데, 유대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3년 가까이 사역하던 중 골로새 출신의 동역자 에바브라를 골로새에 파송하는데, 아마도 이때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골 1:7; 몬 1:2,7). 골로새 성도들은 바울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2:1) 에바브라를 통해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양육을 받았습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

    바울은 수감된 상태에서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4:3,10,18). 아마도 AD 61년경 로마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이 로마에 감금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골로새 성도들은 에바브라를 보내 바울의 안부를 물었고(4:12), 이에 바울은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보내 자신의 사정을 알려주면서, 따로 이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보냅니다.

    바울이 특별히 편지를 쓴 것은 교회 안에 ‘철학과 헛된 속임수’(2:8), 즉 이단 사상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는 오래전부터 여러 민족이 섞여 살았기에 혼합주의가 다른 어떤 곳보다도 강했습니다. 브루기아 지역의 풍속, 동방의 신비주의, 유대교 사상, 헬라의 철학 등이 혼합되어, 너무도 그럴듯한 ‘교묘한 말’(2:4),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2:8),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줄 법한 각종 의식(2:16) 등 인본적인 가치로는 더없이 세련된 가르침으로 무장한 이단 사상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전염병과 같은 이런 이단 사상의 치료제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이미 들은 복음, 즉 진리의 말씀을 그 치료제로 제시합니다(1:5-6,23). 따라서 바울은 이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강조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요 통치자요 구속주이시고(1:15-22, 2:9-15), 모든 지혜와 지식의 주이시며(2:2-3), 모든 율법의 실체이자 완성이시고(2:16-23), 모든 삶의 목적이요 소망이시며(3:1-11), 삶의 기준이자 모범이심을(3:12-4:1) 보여줍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를 위해서, 그 안에서 존재하기에(3:11),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함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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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치료제는 주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땅’에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위’로부터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3:1). 다시 말해, 성도는 ‘옛 사람’처럼 이 땅에서 행복하기만을 추구하지 말고, ‘새사람’을 입어 주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따스한 오뉴월, 역대하와 골로새서를 묵상하면서 삶의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삶의 방향을 영광의 그리스도께로 맞추시기를 기도합니다.

    글 │ 이성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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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MAY / 토요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사

    역대하 13:1-12

    새 251 통 137•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 맥체인 성경읽기•민8 시44 아6 히6

    여로보암과의 전쟁

    1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고 2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새 3아비야는 싸움에 용감한 군사 사십만 명을 택하여 싸움을 준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큰 용사 팔십만 명을 택하여 그와 대진한지라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는 무리

    4아비야가 에브라임 산 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이르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6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자기의 주를 배반하고 7난봉꾼과 잡배가 모여 따르므로 스스로 강하게 되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였으나 그 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그들의 입을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 8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도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

    9너희가 아론 자손인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들의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누구를 막론하고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들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10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가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들이 수종 들어 11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잔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1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

    도움말

    미가야: 르호보암의 아내이자 아비야의 어머니로, ‘압살롬의 딸 마아가’라고도 불림(대하 11:20). 압살롬의 딸 다말이 기브아 사람 우리엘에게 낳은 딸로, 압살롬의 손녀일 것으로 추정됨(삼하 14:27)

    스마라임: 여호수아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한 성읍으로 당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경계에 위치함(수 18:22)

    소금 언약(5절): 결코 파기될 수 없는 영원불변한 언약(레 2:13; 민 18:19). 부패와 변질을 방지하는 소금의 항구성에 비견되는 하나님의 영원함과 신실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장립(將立)을 받다(9절): 성직을 받다

    본문요약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년간 다스릴 때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웁니다. 그는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에게 소금 언약으로 세워진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남유다의 여호와 신앙을 대비하면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과 싸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중보기도 영적 전장에 선 선교사님들이 말씀을 붙잡고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을 누리게 하옵소서.

    본문해설 역대하 13:1-12

    여로보암과의 전쟁 (1-3절) 르호보암이 죽자 그의 아들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의 어머니 미가야가 르보호암의 사랑을 독차지한 덕분에 아비야는 다른 형제 27명을 제치고 르호보암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11:21). 그런데 아버지의 모든 죄를 행한 아비야에게 북이스라엘 왕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왕상 15:3). 아비야는 군사 40만 명으로 싸움을 준비했지만, 여로보암은 그 두 배에 해당하는 대군을 거느리고 옵니다. 왕위를 차지해서 평생 악을 행할 수 있던 아비야에게 여로보암이 쳐들어온 것은 다윗의 등불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왕상 15:4). 이 전쟁으로 아비야가 영적으로 깨어나고, 남유다 또한 여호와를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오르고 원하던 바를 차지했다고 교만해지거나 안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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