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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ing Quiet Time with the Lord Every Day (Korean Edition)
Keeping Quiet Time with the Lord Every Day (Korean Edition)
Keeping Quiet Time with the Lord Every Day (Korean Edition)
Электронная книга269 страниц2 часа

Keeping Quiet Time with the Lord Every Day (Korean Edition)

Автор Yangj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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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б этой электронной книге

Storytelling QT Cuidebook that interperts Your LIfe by the Word.

The Power of Meditation that interperts Your Life!


A Steady-seller that Led 130,000 Readers to Bible Meditation for Fifteen Years.

Язык한국어
ИздательRH Korea
Дата выпуска16 июн. 2021 г.
ISBN9791189927844
Keeping Quiet Time with the Lord Every Day (Korean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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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eping Quiet Time with the Lord Every Day (Korean Edition) - Yangjae Kim

    추천의 글 1

    image-6-915.png

    김양재 목사님은 제가 처음 만났을 당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외모에 새침데기 성격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늘 화제가 되던 예쁜 여학생이었습니다. 저는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도 그의 신앙 열정을 보았으나 제가 CCC를 나온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75년에 제가 반포에서 남서울교회를 개척했을 때 우연히 길을 가다 만났는데, 결혼해서 반포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근처에 교회를 막 개척했다고 하자 그때부터 저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서울교회에서 줄곧 신앙생활을 함께하면서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김 목사는 괴로운 영적 갈증을 하나님 말씀을 묵상함으로 해결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거의 받지 않고 홀로 큐티지 본문으로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는데, 그 묵상의 은혜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과 감화를 끼쳤습니다.

    남서울교회에서 재수생 아이들과 마음 둘 곳이 없어서 중심을 잡지 못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은 말씀으로 힘을 얻어 고통스러운 시절을 건강하게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남편이 간 파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고, 저는 그가 남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말씀의 위로가 그 무서운 비극 속에서도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을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그것 자체가 제게는 놀라움이자 감동이었습니다. 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4). 이 반석 때문에 꿋꿋이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다시 감격에 겨워지곤 합니다. 이후 그는 구체적으로 큐티의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남서울교회에서는 본당을 이용해 큐티 모임을 키워 갔고, 또한 세계 도처의 유학생들에게 큐티를 가르치는 스승이자 앞선 큐티의 모범답안으로서 사람들에게 은혜와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가 계속 자라 몇 곳에서 커다란 큐티 모임을 시작했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백석신학대학원 석사(M. Div.) 3년 과정을 귀하게 잘 마쳤습니다. 지금껏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김양재 목사님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다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그의 안에는 이 땅에서 눈물 흘리는 무수한 사람과 함께 울면서 주의 위로를 전하는 놀라운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그를, 주님의 사랑을 받던 마리아처럼 거룩한 부녀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은혜로운 삶으로 계속 인도하실 것을 기대해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그의 간증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풍성히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

    추천의 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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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김양재 목사님(당시 강도사)을 처음 본 것은 미국에서 열린 코스타(KOSTA, 한국유학생 수련회)에서였습니다. 속된 말이지만 당시 김양재 강도사님의 강의는 그 어떤 강사의 강의나 설교보다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솔직히 목사로서 자존심도 조금 상하고 배도 조금 아팠지만(?) 학생들이 김양재 강도사님의 강의에 은혜를 받고 줄을 서서 강의 테이프를 사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전에 김양재 목사님이 사역하시던 큐티선교회에서 제가 섬기던 교회의 본당을 빌려 큐티 집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2천 석이나 되는 작지 않은 예배당이었는데 그 큰 예배당을 꽉 채운 것을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단순히 큐티를 통한 말씀의 은혜에 사람들이 감동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와 미신(迷信)을 비교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미신은 자기가 믿는 신의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뜻과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종교입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에도 그와 같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과 욕심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종교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신은 자기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천국으로 이해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천국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해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하늘이든 땅이든 하나님의 나라라고 이해하셨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천국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 묵상을 통해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힘쓰고 노력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일을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서슴지 않고 김양재 목사님을 꼽겠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은 정말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입니다. 그의 그 유명한 큐티에 대한 간증과 강의를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큐티에 대해 도전받고, 큐티 방법을 전수받아 김 목사님처럼 날마다 큐티하면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사는 귀한 백성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지금껏 누구의 책을 소개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 추천도 웬만해서는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양재 목사님과 그가 책으로 펴낸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김동호 (높은뜻연합선교회 前 대표)

    이 책을 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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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고난은 하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모든 사람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고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큐티(Quiet Time) 모임을 통해 수많은 분과 함께 말씀을 읽고 또 나누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알게 된 저의 추함과 더러움 그리고 욕심뿐만 아니라, 제가 겪은 고난의 여정을 숨김없이 사람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 개개인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말씀 안에서 함께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0여 년 전 저희 집 응접실에서 시작한 재수생 모임이 매주 천여 명이 참석하는 주 3회 모임이 되었고, 지금은 우리들교회 수요예배로 모이고 있습니다. 당시 섬기던 남서울교회 홍정길 목사님의 부탁으로 큐티 모임을 시작했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집사 신분이니 잠깐 하다가 그만두게 될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말씀으로 가정이 회복되고 살아나는 열매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인지라 제 간증을 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에게 말씀묵상의 은혜와 말씀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제 삶을 나누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제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참 성실하게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만에 하나 저의 간증으로 이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제 간증이 단순한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주님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어주시고 세밀한 부분까지 간섭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때에 따라 등장하는 분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이해를 바랍니다.

    2002년 12월

    김양재

    이 책을 ‘다시’ 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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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가 출간된 지도 어느덧 15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만 해도 평신도 입장에서 쓴 글이었는데, 그 후 신학을 하고 15년 넘게 목회를 하는 지금 다시 봐도 전하고자 하는 바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아마도 남을 가르치려고 쓴 글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기고 썼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2012년에 일부를 수정한 개정판을 출간했지만, 이번에 다시 책 곳곳에 새로운 에피소드와 메시지를 더해 개정증보판으로 펴냅니다. 그간 제 삶을 이끌어준 에스겔서 48장 전체를 아우르는 간증을 다 담지 못한 아쉬움이 못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증보판은 큐티선교회(QTM)가 본격적인 문서 사역을 위해 출판사를 설립하고 ‘도서출판 큐티엠’의 이름으로 펴내는 것이라 감회가 더욱 새롭습니다.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는 평신도로서 큐티 모임을 인도하던 제가 주변의 권유로 내게 된 첫 책입니다. 저희 집에서 시작한 재수생 모임이 매주 천여 명이 모이는 큐티선교회가 되었고, 큐티 모임을 통해 수많은 분과 말씀을 읽고 나누다 보니 하나님은 목회를 전혀 생각해본 적 없던 제게 우리들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목회를 위한 목회가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주님이 여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주셨습니다.

    선한 것 하나 없는 제가 일관되게 영혼 구원과 말씀묵상을 부르짖으며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성 고유의 섬세함으로 성도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함께 울며 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적 관념이 남아 있는 한국 교회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보내주신 환난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지쳐 쓰러지려 할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하셨습니다. 삶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살아나고, 이혼하려던 부부가 합쳐지고,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수도 없이 보게 하셨습니다.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니 제 안에도 날마다 새로운 은혜와 사명감이 충만했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우리들교회가 지금은 1만 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고, 1년에 두 차례 진행하는 ‘목욕탕 큐티목회세미나’를 통해 한국 교회를 섬기는 일도 감당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크고 작은 굴곡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6년 가을, 가슴에 암이 발견되어 수술 후 여섯 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목회의 정점에 다다른 것 같은 시점에 암에 사로잡혀서 문자 그대로 꼼짝 못 하고 대여섯 달을 항암의 감옥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항암을 겪은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말씀으로 사건을 해석하면서 가니까 사명 때문에 일어나고, 먹고, 산책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만 생각하면 이 질고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동안 주의 일을 한다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상(賞)을 주셔야지 ‘무슨 암인가’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유황불 같은 항암의 사로잡힘에서 또 하늘이 열렸습니다(겔 1:1-3). 저 자신의 죄성(罪性)을 더 많이 보고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택한 자는 사건이 올수록 자기 죄를 보는 것, 이것이 상이고 그리스도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에 에스겔서 말씀을 처음 묵상할 때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에스겔 같은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참 겁도 없이 그런 기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저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가실 것을 믿습니다.

    언젠가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암’이라는 사로잡힘 가운데 말씀으로 헤쳐나가는 부부의 삶이 소개되었습니다. 결혼 3년 만에 첫 아이를 낳고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남편이 대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충격으로 시어머니는 너무 괴로워하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고, 몇 개월 후에는 아내까지 혈액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가 고난 가운데서도 묵묵히 말씀묵상을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그 교재는 큐티엠에서 발행하는 《큐티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 방송도 아닌 공영방송에서 《큐티인》을 만나게 되다니요. 그 인연으로 큐티엠에서 부부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는데, 암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내 죄를 보게 해주는 기도가 더 은혜가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말씀이 특별히 임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부부가 암 투병이라는 사로잡힌 환경에서도 각자의 죄를 보면서 암마저도 내 삶의 결론이라고 고백하고 있으니, 이 부부는 사나 죽으나 큰 영광이 임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내 죄 때문에 아파하면 어떤 고난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큐티로 살아났다는 이야기,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 삶의 간증이 약재료가 되어 이 세상을 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 말씀묵상 운동의 사명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참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삶을 말씀으로 인도해주시고 해석해주신 주님을 다시금 뜨겁게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사해와 같은 각자의 선교지로 가서 죽은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의 일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8년 4월

    김양재 (우리들교회 담임목사·큐티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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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망과 신앙 사이

    에스겔서 1장 1절에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서른째 해는 에스겔의 나이로 보는데,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포로로 사로잡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바벨론의 그발 강가는 없는 것 없이 풍요로워 하나님이 결코 나타나시지 않을 것만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지 5년 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여호야긴 같은 나의 왕이 사로잡혀가고 나 또한 사로잡힌 자가 되어 땅끝까지 내려가는 고난을 겪어야 하늘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마저도 금세 열리는 것이 아니고, 사로잡히고도 5년이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그토록 목매어 바라보던 최고의 나라 바벨론이라 할지라도, 그 땅에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처지가 되면 그제야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를 돌이켜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로잡힌 자 중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제 인생의 시기마다 사로잡힌 부분이 있었고, 그렇게 사로잡힌 만큼 하늘이 열렸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최고 강대국인 바벨론 그발 강가의 영광을 사모해 그곳에 가기 위해 피아노를 치면서 시간에 사로잡히고, 인정중독에 사로잡혀 서울대를 가고, 그 학벌로 바벨론의 그발 강가 같은 남편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방문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설마?’ 하고 하나님의 방문을 기다리지 않은 채 오직 백마 탄 왕자만 기다렸습니다. 그런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습니다.

    운동선수도 아닌데 체격은 왜 저리 크담. 휴, 서른 살이라니…… 나이도 너무 많아.

    눈송이가 하나둘 안국동 거리에 살포시 내려앉는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그해 겨울의 첫눈이라는 반가운 마음도 잠시, 아버지와 함께 나선 맞선 자리는 몹시 지루하고 갑갑했습니다. 저는 당시 대학 졸업을 두세 달 남겨둔 학생이었는데, 양가 어른들은 이미 결혼을 결정하고 상견례를 하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맞선 상대는 의사 후보생으로 좋은 조건이었지만, 저는 그의 외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이 먼저 일어나신 후 둘 사이에는 어색한 대화만 오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후 맞선 상대는 기사를 대동한 차로 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아버지께서 제 의중을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학 가서 피아노를 더 공부해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던 터라 결혼은 애초에 생각이 없었습니다. 마침 한 예술고등학교에서 전임 강사를 맡아달라는 제의도 오가던 때였습니다.

    저는 딱 잘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래 교만해서 그렇다우 하시며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맞선 상대는 이름난 사업가 집안의 셋째 아들로 산부인과 레지던트인 데다 그 부모님은 장로님, 권사님이었으니 제가 교만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상대가 저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만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는 당시 진주에서 무의촌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금요일이면 야간열차로 서울에 올라와 주말에 저를 만난 후 주일 밤이면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진주에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올 때마다 저희 집에 와서는 아버님 하고 부르며 넙죽 큰절을 올리니 부모님도 이 청년을 듬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꼬박 6개월을 진주에서 서울로 오가는 그의 적극적인 모습에 제 마음도 조금씩 움직였고,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유복한 가정환경과 산부인과 의사라는 배경이 제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예배 반주자로 섬기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학교에서도 대학생선교회(CCC)라는 선교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했지만, 제 안에는 음대 교수를 하고 싶은 세상적인 야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남편이 갖춘 요건을 발판 삼아 내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저는 4대째 모태신앙인 집에서 자랐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저희 집안은 선교사에게 일찍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 가정이었습니다.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믿음 좋은 어머니와 성품 좋은 아버지 사이에서 저는 위로 언니 셋을 둔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3대째 신앙생활을 하는 가정에서 자라셨지만 믿음은 그다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시집와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고난을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분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시집도 부잣집에 와서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연달아 딸만 셋을 낳자 어머니는 아들을 낳기 위해 갖은 애를 쓰셨다고 합니다. 교회 성가대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기도 하고 온갖 봉사와 헌금을 하셨습니다.

    저를 임신하셨을 때는 목사님을 통해 이름도 아예 남자 이름인 ‘양재’로 지어놓고 이불도 파란 비단이불로 준비해놓았지만 네 번째도 딸인 저를 낳자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정성을 다하지 않아서 딸을 낳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도 딸을 낳자 어머니는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슬퍼하셨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게 잘되려고 예수를 믿는 기복신앙이었습니다.

    아들 하나 낳기 위해 섬김이 요란하다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지나쳤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겪은 수모와 고난을 통해 주님을 뜨겁게 만나게 된 어머니는 평생 직분 없이 교회를 섬기며 생색 한 번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완전히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신 것입니다. 매일 새벽 ‘몸뻬’ 차림으로 기도하시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남의 집 빨래까지 도와가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냄새가 심한 재래식 화장실이었는데도 개의치 않으셨고, 헌금도 무명으로 하시면서 정말 이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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